1. 촉각적 서사와 도시 공간의 재구성: 시각 장애인의 경험 넘어
한석원 작가의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단순한 시각 장애인의 삶을 그린 소설이 아니에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각이라는 감각이 제거되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다른 감각에 의존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인지하게 되는지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시각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촉각,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들을 통해 도시를, 그리고 서로를 ‘읽어내요’. 단순히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각의 재편성을 통해 새로운 도시 지도를 그려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작가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도시 공간을 시각 장애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데 성공했어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소음, 건물의 질감, 공기 중 떠도는 냄새들… 이런 것들이 소설에서는 도시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죠. 예를 들어, 저는 평소에 길을 걸으면서 건물 외벽의 재질이나 나무의 껍질의 질감같은것들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세세한것들이 얼마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깨달았어요. 마치 제가 시각장애인이 된 것처럼, 도시를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촉각적 기억’이라는 개념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손끝으로 느껴지는 질감과 온도가, 시각적인 기억처럼 강렬하고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설정이죠. 이런 설정은 작품에 독특한 리얼리티를 부여해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시각 장애인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녹아들어 있는 거 같아요.
2. 관계와 소통: 다름을 넘어선 연결
이 소설은 시각 장애인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그들이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줘요. 시각 장애인들은 시각에 의존하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공감은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소설 속 인물들 간의 비언어적 소통이었어요.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그들은 몸짓, 소리, 촉각적인 접촉을 통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이러한 비언어적 소통은 단순한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들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요. 소설은 이러한 비언어적 소통의 미묘한 뉘앙스와 복잡성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소통하는지 반추하게 만들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소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더욱 깊은 관계를 맺어가죠. 이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3. 도시와 자연: 대비와 조화
소설 속 도시는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과 깊숙이 연결된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시각 장애인들은 도시를 다른 감각으로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내요. 그들의 도시 경험은 우리의 일상적인 도시 경험과 는 상당히 다르죠. 소설 전반에는 도시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모습과 자연의 평화롭고 정적인 모습이 대비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이러한 대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도시 생활 속에서 자연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 속 자연 묘사가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시각 장애인의 관점에서 묘사된 자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자연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바람의 소리, 풀잎의 촉감, 흙의 냄새와 같은 것들이 자연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이는 우리가 자연을 단순히 시각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통해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아요.
4. 언어의 힘: 서술 방식과 의미
한석원 작가는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독특한 서술 방식을 사용해요. 시각 장애인의 관점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들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묘사가 많이 쓰였어요. 이런 서술 방식은 단순히 시각 장애인의 경험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언어를 통해 감각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가가 사용하는 비유와 상징이 매우 인상 깊었어요. 이러한 비유와 상징은 단순히 문학적인 장치를 넘어,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주제의식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소설 속 어떤 사물의 묘사가 단순한 실체적 묘사를 넘어 인물의 내면 세계나 작가의 주제 의식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한 부분들을 찾아 보는 것도 소설 읽는 또 다른 재미였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작가의 세련된 문체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